1909-1956: 초창기 – 새로운 기업 모델 구축

1909 – 라콰피르 드파리 (La Coiffure de Paris): 미디어 협력 관계 구축

1909년 10월 최초로 발간된 잡지인 라콰피르 드파리(La Coiffure de Paris)는 의사, 작가와 화학자들의 기고를 실었습니다. 유진 슈엘러는 편집팀에서 과학 칼럼을 담당하였으며 염색 시 패치테스트를 최초로 권고하는 기사를 실어서 염색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슈엘러는 1912년에 라콰피르 드파리 잡지를 인수했습니다.

1909 – 로레알의 공식 출범

유진 슈엘러는 1904년 프랑스 국립 화학 공학 학교(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Chimie de Paris)를 졸업하고 1909년 7월 30일 로레알로 성장하게 될 Société Française des Teintures Inoffensives pour Cheveux를 설립합니다.
1907년, 젊은 화학자 유진 슈엘러는 인체에 무해한 화학성분을 결합하여 오레알(Oréal)이라는 이름의 염모제를 만들어내면서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냅니다. 기존에 시장에서 판매되던 제품과는 차별화되는 자연스럽고 다양한 색상을 망라한 이 염색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품이었으며 헤나 또는 미네랄 염분을 사용해 밝고 인위적인 색상을 연출해주었습니다. 1908년 3월 24일 슈엘러는 이에 대한 특허 출원을 합니다(제383920호).

 

1910 – 최초의 헤어 패션쇼

유진 슈엘러는 파리의 헤어 디자이너들이 그의 염모제를 사용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새로운 회사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넘쳤던 슈엘러는 프랑스 전역에서 그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직원들을 고용합니다. 또한 파리 루브르 거리에 모발 염색 학교를 설립하고 직접 경영하며, 러시아 궁전에서 일하던 헤어 스타일리스트를 영입하여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킵니다. 자신의 성공이 헤어 스타일리스트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슈엘러는 이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지속해 나갔고, 그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집니다.

 

1920 – 국제 무대로의 진출

전쟁이 마침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세계 전역에서 여성들이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나이를 들어 보이게 하는 흰머리를 감출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오레알 모발 염색제는 큰 성공을 거두며 프랑스를 넘어 1910년에는 이탈리아, 1911년에는 오스트리아, 1913년에는 네덜란드로 진출하였으며, 미국, 캐나다, 영국, 브라질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됩니다.

 

1925 – 모발 하이라이트를 위한 로레알 도르(d’Or)

다재 다능했던 유진 슈엘러는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려 셀룰로이드, 니스, 플라스틱 분야에도 진출하고, 러시아에도 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그의 업계 성공은 연구와 혁신이 성장과 성공의 주춧돌이 된다는 그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줍니다. 슈엘러는 계속해서 뷰티 산업을 혁신해가는 한편, 금색 틴트를 통해 금발을 더욱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파격적인 모발 하이라이트 제품, 로레알 도르(d’Or)를 선보입니다.

 

1928(1)- 몽사봉(Monsavon) 인수

유진 슈엘러는 1920년에 창립한 사봉(Savons Français)이라는 회사를 인수합니다. 클리시에 있던 사봉의 생산공장은 후에 로레알의 본부가 됩니다. 유진 슈엘러는 사업 현대화 계획의 실행과 함께 유명 브랜드 몽사봉의 품질 개선과 광고 캠페인의 스타일 변화에 집중합니다.

 

1928(2): 헤어케어 제품의 효시, 오캡(O’CAP)

(오캡 헤어로션: 물 없이 씻는 헤어 제품). 사람들이 자주 머리를 감지 않던 시절, 거품 타입의 헤어 워시 제품인 오캡은 프랑스어로 헤어로션을 뜻하는 오카필레르(Eau Capillaire)에서 제품명을 착안하였으며 로레알은 프랑스 국민들이 개인 위생에 관심을 가지도록 점진적으로 유도하겠다는 유진 슈엘러의 교육적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샴푸를 출시하게 됩니다.

 

1929(1)- 이미디아(Imédia)의 즉각적인 성공

보다 자연스럽고 오래 지속되는 염모제를 개발하기 위해 유진 슈엘러는 모발 섬유에 스며들 수 있는 유기농 염색 솔루션 개발에 나서게 되는데, 여기에는 몇 년 전 특허로 등록된 파라디아민이라는 급속 침투형 염색제가 활용됩니다. 이미디아는 갑작스럽고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1931년에는 새롭게 포장된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시판되게 됩니다. 경쟁사가 여전히 산화될 위험이 높은 대형 용기에 담아 제품을 팔던 당시, 슈엘러는 이미디아를 1회분씩 포장해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최종 사용자 모두의 안전성과 편리성을 개선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줍니다.

 

1929(2)- 플래티넘 블론드의 비밀, 로레알 블랑(Blanc)

유진 슈엘러는 최초의 탈색 솔루션을 판매하면서 외친 “이 작은 병에 하나의 산업이 담겨 있습니다! 언젠가는 수 백만 명의 갈색머리가 금발이 되고 싶어할 겁니다!”에 담긴 가치를 재빨리 깨닫습니다. 영화라는 신산업이 그의 예언을 적중시켜줍니다. “플래티넘 블론드”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한 진 할로우를 필두로 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면서 금발이 가장 매혹적인 컬러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로레알 블랑 탈색용 파우더는 최고 인기 헤어 스타일리스트들 사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열광적인 소비자들은 “플래티넘 블론드”라는 모임을 조직하기에 이릅니다.

 

1931- 광고계의 개척자

신제품 개발에만 만족하지 못한 유진 슈엘러는 그의 재능을 광고 이벤트를 개발하고 새로운 광고 전략을 만들어내는데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1931년 그는 파리 한 건물의 한 면 전체를 커다란 천으로 덮어 오캡 헤어로션을 위한 거대 광고판으로 만듭니다. 1932년, 라디오 광고가 아직 초창기이던 당시, 다른 광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튜디오에서 설명을 읽어 내려가던 시절에 슈엘러는 최초로 설명 대신 노래를 사용한 광고를 방송합니다. 그렇게 해서 CM송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때 슈엘러는 광고에는 관심을 끌기 위한 광고와 판매 극대화를 위한 광고, 두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933(1)- “보트르 보떼(Votre Beaute)” 새로운 언론 분야로의 진출

미용 및 개인 위생 산업이 여성들의 더 큰 자유를 누리도록 만들어주기 시작한 당시, 유진 슈엘러는 여성들의 미용 제품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최초의 여성용 건강&미용 잡지, 보트르 보떼를 출간합니다. 화학자 겸 제조업자라는 그의 타이틀에 발간인, 저널리스트, 레이아웃 아티스트라는 직함이 추가됩니다. 이는 모든 여성의 실질적인 기대치, 라이프스타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33(2)- 도팔(Dopal), 최초의 비누 무첨가 샴푸

힌두어 “샴포”에서 파생된 샴푸는 마사지하다 또는 주무르다 라는 뜻인데 당시까지만 해도 일상에서 사용되는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헤어스타일리스트들이 쓰던 샴푸는 검은 비누에 소다 결정체를 넣은 물에 끓여서 만든 것으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로레알은 최초로 업계 종사자들에게 (황산염 지방 알코올 함유) 비누가 첨가되지 않고, 머리에 닿는 느낌도 훨씬 부드러우며 1L 용기에 담겨 판매되는 진정한 샴푸를 선보입니다. “도팔”로 알려진 이 제품 라인은 오늘날까지도 “도프(Dop)”이라는 제품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34- 도프(Dop)의 혁명

프랑스 전역에서 판매되던 도프는 쉽게 말해 대중을 위한 최초의 “현대식” 샴푸였습니다. 모발에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는 손쉬운 포뮬러가 함유된 “용해도, 가열도 불필요한” 진정한 제품 혁신이었을 뿐 아니라, 프랑스의 가정 위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슈엘러는 그가 만든 샴푸를 광고하면서 프랑스인들의 개인 위생에 대한 인식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1935- 앙브레 솔레르(Ambre Solaire) 핀업 광고

여성들은 더 큰 해방감을 맛보며 보다 과감한 노출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우중충한 드레스와 창백한 피부톤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선탠이 건강하고 모던한 여성의 상징이 됩니다. 이런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추어 슈엘러는 앙브레 솔레르라는 피부 보호용 오일을 개발합니다. 따뜻해 보이는 호박색, 매력적인 향, 손으로 들기 쉬운 곡선형 병 디자인, 모두가 원하는 핀업 광고까지, 새로운 제품은 수많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담아 탄생했습니다. 제품 출시일 또한 완벽하게도 1936년 프랑스인들의 유급 휴가 첫 개시일과 맞아떨어졌습니다. “레저”의 시대가 열리면서 앙브레 솔레르가 당대의 첫 상징이 됩니다. 1937년의 장미와 자스민향 제품 또한 휴가 시즌 분위기의 상징이 됩니다.

 

1939- “로레알”로의 새로운 시작

4월 4일, Société des Teintures Inoffensives pour Cheveux는 회사명을 “로레알(L’Oréal)”로 변경합니다.

 

1940- 로레알, 헤어스타일리스트 교육에의 투자

로레알은 이제 점점 더 정교해지는 제품을 판매하게 되었고 여성용 헤어살롱의 수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로레알의 성공은 헤어스타일리스트의 성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굳게 믿어 온 유진 슈엘러는 헤어스타일리스트 업계와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기에 나섭니다. 이에 따라 기술 교육, 창업 지원, 고객 충성도 강화를 위한 비법 등을 교육하고 전수하는 학교(Ecole Technique des Arts et de la Coiffure)가 문을 엽니다. 로레알은 이를 통해 헤어스타일리스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공고히 합니다.

 

1942- 비누 산업의 혁명

1928년에 비누 제조사인 몽사봉을 인수한 슈엘러는 몽사봉 제품 포뮬러에 우유 함량을 6% 늘려 부드러움과 모양을 개선함으로써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장에서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업적에 만족하지 않고 슈엘러는 제조 공정의 속도를 개선하기에 나섭니다. 1942년과 1943년 사이에 3건의 특허로 등록된 이 비누화 공정은 빠르게 비누 산업 전체에 도입됩니다. 1961년 몽사봉의 매각 뒤, 클리시(Rue Martre) 공장은 사무실 건물로 바뀌었으며 후에는 로레알의 본사가 됩니다.

 

1945- 최초의 “콜드 펌”: 오레올(Oréol)

코코 샤넬이라는 스타 디자이너에 힘입어 패션업계에서는 펌으로 컬을 만들어 연출하는 짧은 머리가 유행이 됩니다. 하지만 기존의 펌 방식은 가열용 후드와 전기식 롤러를 필요로 하였는데, 기기들이 살롱의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고객들도 불편한 과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에 로레알은 활성 산성 성분과 셋팅 로션을 결합한 “콜드 펌” 오레올로 헤어살롱의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여성들은 보다 자연스러운 컬을 가지게 됩니다.

 

1951(1)- 이미디아 크림 D(Imedia Crème D): 탈색과 염색을 한 번에

염색의 새로운 트렌드. 탈색이 따로 필요 없는 모발 컬러 연출: 신제품 이미디아 크림 D 포뮬러는 모발 탈색과 염색을 한꺼번에 해결해주어 염색 과정을 단축시켜주면서 모발 섬유를 효과적으로 케어해줍니다.

 

1951(2)- "베르렝고 도프(Berlingot Dop)"

작고 컬러풀 하며 향기도 좋고 커다란 유리병에 개별 포장되어 판매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청결함과 즐거운 경험을 한데 묶고자 한 유진 슈엘러의 생각을 반영한 1회용 분량의 샴푸로 낱개 포장된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 팩에 담긴 "베르렝고 도프"입니다. 베르렝고 도프는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1952- 레제 컬러(Régé Color)의 직접 염색법

로레알은 두 가지를 혁신시킨 직접 염색 솔루션, 레제 컬러로 헤어 살롱을 위한 새로운 컬러링 서비스를 개시합니다. 레제 컬러의 새로운 포뮬러는 모발 섬유 표면에 염모제가 안착되어 6~8회 머리를 감으면 색이 옅어지는 방식을 채택한 전문가용으로 고안된 산뜻한 방식의 제품인 동시에 사용하기가 매우 간단해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이 제품을 직접 고객에게 판매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재판매 시스템은 그 후로 오랫동안 이어지며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실질적인 사업 개발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로레알의 의지를 재확인시켜 줍니다.

 

1954(1)- 로레알 해외 성장의 전환점

미국 시장: 로레알은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인 미국에 대한 3년 간의 시장 조사를 거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진출하기로 결정합니다. "모발용 화장품"을 뜻하는 COSMAIR는 로레알의 미국 헤어 제품 총판을 담당하며 로레알의 해외 시장에서의 성장을 이끌게 됩니다.

 

1954(2)- 어린이 청결 캠페인

유진 슈엘러의 야심 찬 캠페인의 핵심은 바로 개인 위생에 있습니다. 하지만 슈엘러는 부모들에게 청결의 필요성을 거듭하여 설교하는 대신 초등학교 대상 인식 개선 캠페인 “깨끗한 어린이의 날”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직접 어필하는 전략을 택합니다. 이를 통해 칠판에 개인 위생에 대해 내용들을 설명하고, 개인 위생이라는 주제에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교육용 게임을 소개하는 한편, 도프 샴푸와 몽사봉 비누를 나누어줍니다. 이 캠페인은 베이붐세대를 산뜻한 향을 풍길 수 있는 세대로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1954(3)- 약국 부문으로의 진출

모든 유통 채널에서 입지를 넓히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로레알은 1954년 비쉬(Société hygiene Dermatologique de Vichy)와 기술 제휴 계약을 체결합니다. 헤어 살롱과 향수 가게에서의 성공에 힘 입은 로레알은 약국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시작했으며 비쉬는 후에 로레알에 합병됩니다(1980년).

 

1955(1) -오래 지속되는 펌을 위한 플릭스(Plix)

플릭스는 여성들이 모발 연장 솔루션 없이는 시도할 수 없었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해주며 헤어 디자인의 새로운 장을 엽니다. 플릭스는 펌 솔루션의 핵심으로, 같은 컨셉을 바탕으로 출시된 이후의 포뮬러 역시도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1955(2)- 컬러렐(Colorelle): 최초의 컬러 강화 샴푸

마릴린 먼로와 브리지트 바르도가 영화계의 스타로 떠오르며 전 세계 여성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모습을 닮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여성들의 마음을 얻고 보다 자연스러운 컬러를 구현하기 위해 로레알은 최초의 컬러강화 샴푸, 컬러렐을 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