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1983: "위대한 로레알을 만들어가는 여정"

1957- 프랑수아 달, 로레알 회장 겸 이사장

프랑수아 달은 유진 슈엘러의 사후 로레알의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회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위대한 로레알(Le Grand L’Oréal)"의 창시자이기도 한 프랑수아 달은 유일한 발전의 길인 미래로 눈을 돌립니다. 그는 새로운 시장 부문과 유통 채널에서의 로레알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선별적 인수 정책을 펼친 선구자로, 내적 성장의 원동력인 연구 부문을 발전시키고 로레알의 해외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고객 창출을 위한 모든 이들의 화장품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합니다. 

 

1959- 브라질 자회사, FAPROCO 설립

1930년대 후반에 브라질 시장에 진출한 로레알은 1960년대의 호황에 부응하여 1966년에는 FAPROCO(Fábrica Produtos Cosméticos S.A.)를 설립하면서 브라질에서의 직접적인 입지 넓히기에 나섭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2곳의 FAPROC공장을 통한 성공은 오늘날까지도 로레알 브라질이 남미 전 지역의 수출 플랫폼 역할을 하게 하였으며, 2009년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였습니다.

 

1960(1)- 전설의 탄생: 에르네뜨(Elnett) 헤어스프레이

1958년 첫 출시된 헤어스타일리스트용 로레알 네트는 그 뒤 1962년 에르네뜨(여성을 뜻하는 elle과 멋지다는 neat의 합성어)로 개발되어 그때까지만 해도 포마드와 래커 위주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헤어스타일링 제품과는 확연히 차별되며 헤어스타일을 고정해줄 수 있는 새롭고도 놀라운 제품으로 자리잡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머리에 작별을 고하며 만졌을 때 실크처럼 부드러운 머리가 등장한 것입니다. 1962년, 에르네뜨 새틴은 늘씬한 황금빛 실루엣으로 디자인되며 "황금빛 여신"이 됩니다. 1968년에는 다시 한 번 혁신이 이루어져, 머리 전체에 고르게 뿌려지고 아주 간단하게 빗을 수 있는 고운 입자 미스트의 마이크로 스프레이가 출시됩니다. 다시 한번 독보적이며 혁신적인 포뮬러로 로레알은 헤어스프레이 부문을 장악합니다. 로레알의 역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신화적인 제품의 스토리가 탄생한 것입니다.

 

1960(2)- 벨컬러(Belle Color) – 간단한, 믿을 수 있는, 선명한 컬러링 샴푸

초창기에 출시된 컬러링 샴푸 벨 컬러는 홈 컬러링 시장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제품의 성공 요소는 바로 쉽고 빠른 사용법이며, 몇 년 뒤 레시탈(Récital) 탄생의 바탕이 됩니다.

 

1963(1)- 로레알의 주식 상장

놀랍고도 견고한 성장에 힘입은 로레알 그룹은 파리 주식 시장에 상장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자금의 경로가 열립니다. 로레알 그룹의 시가총액은 1967년 이래 750배 이상 성장합니다.

 

1963(2)- 오바오(OBAO): 최초의 거품 목욕제

프랑스 여성들은 최초의 거품 목욕제 오바오로 일본식 목욕법의 비밀을 발견합니다. 이름 또한 편안하게 피로를 풀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줄 수 있는 일본식 전통 목욕법인 오후로(o-furo)에서 직접 영감을 받아 지어진 것입니다. 고체형 비누보다 훨씬 더 세련된 목욕 제품을 원하는 새로운 수요에 부응하는 제품이 등장한 것입니다.

 

1964(1)- 랑콤의 인수

아르망 쁘띠쟝과 도르나노 형제가 1935년에 설립한 랑콤은 뛰어난 향수, 스킨케어, 메이크업 브랜드로 당시 이미 여러 나라에서 우아함과 프랑스 스타일을 대변하는 브랜드였습니다. (1936년 출시된 뉴트릭스를 포함한) 랑콤의 핵심 제품과 국제적인 존재감, 랑콤의 기술전문가와 모델 등은 고급 화장품 부문과 향수 제품에서의 입지를 넓히고자 했던 로레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1964년 랑콤의 인수는 로레알이 럭셔리 부문의 제국을 건설하는 초석이 됩니다.

 

1964(2)- 전문가용 헤어케어의 길을 연 케라스타즈

로레알은 헤어 살롱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모발 염색과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에 더해 케라스타즈라는 브랜드의 전문가용 특수 제품을 앞세운 "헤어케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합니다. 이를 통해 로레알의 연구소에서 개발된 최고의 포뮬러,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전문성, 개인 별 모발 타입에 맞춘 헤어케어 프로그램을 결합시킨 신개념의 차별화를 이루어냅니다. 진단, 두피 마사지, 특수 개발된 기법을 적용하여 이루어지는 트리트먼트 등 정해진 순서대로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헤어 트리트먼트 서비스는 아름다움을 위한 의식으로 자리잡습니다. 아름다움과 웰빙을 위한 특별하고 럭셔리한 경험이 시작된 것입니다.

1967년, 케라스타즈 제품이 고객들에게도 재판매 되기 시작하며 이제는 집에서도 여성들이 헤어 살롱에서와 같은 효과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제품 판매는 헤어 살롱의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됩니다.

 

1965- 가르니에 인수

가르니에(Laboratoires Garnier)는 1920년부터 식물 성분 기반의 로션, 자연 추출 성분 함유 에너지 부스트 샴푸 모엘 가르니에(Moelle Garnier), 염모제 모엘 컬러 등 다양한 헤어 제품을 성공적으로 판매해왔습니다. 로레알은 가르니에 인수로 헤어케어의 또 다른 분야인 오가닉 제품 브랜드를 갖추면서 헤어케어 부문을 보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합니다.

 

1966(1)- 로레알이 개발한 최초의 디자이너 향수

기 라로시의 피지(Fidji): 랑콤의 향수 부문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럭셔리 제품 시장 확대에 나선 로레알은 처음으로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기 라로시와 손을 잡고 새로운 향수를 개발합니다. 이 콜라보레이션의 첫 결과물은 바로 피지로, 클래식 향수로 사랑 받으며 "섬인 그녀, 그녀의 향수는 피지"라는 광고 슬로건과 함께 각인됩니다.

 

1966(2)- 레시탈(Récital): 가정용 염색약

로레알이 레시탈(Récital)을 대량소비시장에 런칭한 이후, 모발 염색을 하기 위해서 더 이상 미용실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 모발 염색 키트는 여성들이 편안하고 사적인 그들의 욕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여성들은 집에서 안전하게 염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랑수아 달은 “가능한 많은 여성이 뷰티에 접근가능하도록 만들겠다”라고 다짐했고, 이 다짐은 이떄부터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1967- 미니 바그(Mini Vague)로 내 맘대로 연출하는 헤어 스타일

헤어 펌을 좋아하지 않는 여성들의 바램에 부응하기 위해 로레알은 모발의 부드러움, 풍성함, 탄력감을 선사하는 전혀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미니 바그를 출시합니다. 그 비밀은 보다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연출해주는 성분 조합에 있습니다. 미니 바그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미니 바그는 영어 데미 웨이브(Demi-wave)에 대응되는 좀더 부드러운 형태의 펌을 뜻하는 프랑스 용어로 자리잡기에 이릅니다.

 

1968- 현대적인 경영진: 영감과 신뢰

직감적이며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위대한 리더였던 프랑수아 달은 혁신적인 관리자였습니다. 그가 도입한 판매사원 동기부여 세미나 같은 프로그램은 당시에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토론식 회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다른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기업들과 함께 최고의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CEDEP(European Centre for Executive Development)을 세웠으며, 1970년에는 다른 기업 총수들과 함께 “Entreprise & Progrès” 협회를 설립합니다. 이는 모두 프랑수아 달의 인간중심적인 기업 경영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의 후임자들도 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아주 젊은 직원들에게도 책임을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27살짜리 매니저들이 있습니다." 그는 웨일스 출신의 젊은 제품 매니저, 린제이 오웬-존스를 발굴해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1969- 랑콤이 최초로 개발한 "오프레시(eau fraiche)"

전통적인 향수 사용 고객보다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한 결코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클래식 향수. 남미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산뜻하고 투명한 이상적인 향수. 간결하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이름, 오드랑콤(Ô de Lancôme)은 Eau (de Toilette)을 떠올리게 하는 O와 브랜드를 대변하는 곡절 악센트 Ô를 차용한 이름을 앞세워 출시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오드뚜알렛 제품으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1970- 비오템 인수

1950년에 설립된 비오템은 처음부터 온천수의 재생력을 활용한 스킨케어라는 오가닉한 접근으로 독특한 포지셔닝을 취한 성공적인 브랜드입니다. 로레알은 비오템이 랑콤과 비쉬를 보완할 수 있는 매우 독창적인 스킨케어 브랜드임을 인식합니다. 로레알은 비오템을 인수하면서 연구 활용에 박차를 가합니다. 4년 뒤, 온천수에 함유된 유효 성분이 밝혀졌으며, 그 유명한 플랑크톤 써멀 쀠르(Plancton Thermal Pur)가 탄생하게 됩니다.

 

1972- 엘세브(Elsève): 모발케어가 되는 샴푸

지금까지, 샴푸의 단 하나의 목적은 모발을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엘세브(Elsève)는 모발의 아름다움을 강화하고, 부드러움을 주며, 영양을 보충하고 윤기를 내는 새로운 종류의 샴푸를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뷰티 삼푸라는 새로운 시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973(1)- 로레알, 제약회사 신테라보(Synthelabo) 대주주지분 인수

신테라보는 프랑스 제약 업계의 선도기업입니다. 로레알 연구팀이 화장품 분야를 넘어 치유 목적의 피부 과학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신테라보 지분의 인수로 로레알은 피부과학 및 피부 약제 분야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1973(2)- 게메이(Gemey) 인수

게메이는 파운데이션과 페이스 파우더 제품에 특화된 메이크업 브랜드로, 1923년 프랑스에서 설립되었습니다. 튜브형 액체 파운데이션 제품, 액체 타입 메이크업(Fluid Make-up)과 최초의 컴팩트형 파우더인 데미에르 뚜쉬(Dernière Touche) 등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선보인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게메이의 인수로 로레알은 대량 소매용 메이크업 시장의 본산지 프랑스에서 해당 부문의 입지를 대폭 확대합니다. 1976년 인수한 마스카라 브랜드 리실(Ricils)과 게메이의 합병으로 로레알은 이제 모든 메이크업 부문에서 제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1974- 네슬레, 로레알과 계약 체결

로레알 주주 구조의 안정성을 더욱 공고히 한 이 계약을 통해 로레알은 해외 시장, 특히 로레알의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할 일본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대합니다.

 

1975(1)- 아르큐리알(Artcurial) 설립

1975년 로레알이 설립한 현대 미술 센터, 아르큐리알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선보입니다. 아르큐리알은 예술계 거물인 소니아 들로네, 맨 레이, 아르망, 베로칼, 클로드와 프랑수아 자비에 라란과 같은 인물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이들을 통해 조각, 도예, 보석 컬렉션을 한정판으로 선보입니다. 이들 아티스트들은 모두 자신의 디자인이 대중과 소통하여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이후 로레알은 뷰티 업계에의 매진을 위해1997년 아르큐리알을 매각합니다.

 

1975(2)- 비쉬의 이쿠알리아(Equalia) 혁명

수 년간 철저하게 준비해온 이쿠알리아의 출시는 지금까지도 교과서적인 사례로 손꼽힙니다. 제품 성공의 바탕에는 피부 보습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큐알리아만의 포뮬러는 바람, 태양, 노화로 인해 위협 받는 수분 밸런스를 피부에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회복, 유지시켜줍니다. 이와 같은 고도의 과학적 전문성은 당시 제약 및 의료 분야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보 및 사실 위주의 광고 캠페인은 영향력을 더하며 이쿠알리아의 역사적인 성공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쿠알리아는 전 세계에서 5천만 개 이상 판매된 제품이 됩니다.

 

1978(1)- 전 세계 소녀 감성의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까사렐의 아나이스 아나이스(Anais Anais)

패션 하우스 까사렐은 로레알의 요청으로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향수 개발에 나섭니다.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아나이스 아나이스는 전 세계 향수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오랜 기간 인기를 유지합니다. 독특한 꽃 향기와 포토그래퍼 사라 문 특유의 울트라 로맨틱 비주얼을 차용한 광고 캠페인의 완벽한 조합이 아나이스 아나이스 성공의 비결이 됩니다.

 

1978(2)- 랑콤을 매혹시킨 마지느와르(Magie Noire)

오드랑콤 이후 랑콤은 새로운 향수 출시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마지느와르는 기존 향수의 틀을 깬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오리엔탈 향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78(3)- 로레알 프로페셔널의 마지렐(Majirel)

헤어케어에 집중한 염모제: 혁신적인 기술: 로레알은 모발을 염색하면서 보호해주는 최초의 염모제를 개발합니다. 새롭게 개발되어 특허 등록된 분자인 이오닌G (Ionène-G)는 모발에 침투하여 염색 과정과 그 후까지 모발을 지켜줍니다. 이처럼 혁신적인 기술이 처음 적용된 포뮬러가 바로, 헤어 스타일리스트용 마지렐입니다.

 

1979- 소피아앙티폴리스에 설립된 피부 과학 연구 센터

로레알은 네슬레와 함께 손을 잡고 R&I (Research & Innovation) 투자를 강화하여 프랑스 니스 인근 소피아앙티폴리스의 과학 단지에 피부 과학 연구 센터(CIRD)를 설립합니다. CIRD는 피부의 생리학 원리와 노화 과정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1980- 최초의 모발 보호 펌 솔루션, 둘시아(Dulcia)

모발 염색에 혁명을 가져온 모발 보호 성분 이오닌G가 최초로 펌 솔루션에도 함유되어 펌 과정에서 모발을 지켜주는 제품이 탄생합니다. 이를 통해, 힘 있고 부드러운 모발 연출이 가능해집니다.

 

1981- 갈데마(Galderma) 연구소 설립

네슬레와 로레알의 50:50 합작 투자로 설립된 갈데마는 “피부 과학의 미래에 헌신한다”라는 슬로건 하에 피부, 모발, 손톱 트러블(여드름, 건선, 손발톱 진균 등)에 효과적인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피부과적 치료법을 개발하고 판매하기 위해 매진합니다. 건강 관리 중에서도 매우 세심한 통제를 필요로 하는 피부 과학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독립 기관으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82(1)- 로레알 플레니튜드(Plenitude). 대중 시장을 겨냥한 스킨케어

로레알은 소비자 스킨케어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내다봅니다. 대중 시장의 스킨케어 부문을 장악하기 위해 로레알은 새로운 브랜드, 플레니튜드를 선보입니다. 플레니튜드는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기술, 새로운 유효 성분, 놀라운 텍스처를 여성들에게 선사합니다. 이를 위해 최상위부터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펼치며 고도로 발전된 정교한 제품군인 주름 완화 크림부터 출시합니다. 플레니튜드는 “노화의 징후를 미룬다”를 슬로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1982(2)- 기라로시의 드라카 느와르(Drakkar Noir)

이어지는 성공 가도: 기라로시가 피지로 거둔 성공을 남성용 향수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질문의 답은 바로 드라카 느와르에 있습니다. 바이킹 정복자들을 연상케 하는 신비로운 이름과 세련된 블랙 디자인을 앞세운 지극히 남성적인 향수 드라카 느와르는 1980년대 큰 성공을 거둡니다.

 

1982(3)- 선크림의 혁명, 멕소릴 SX(Mexoryl SX)

선블럭 분야 연구의 도전 과제는 포뮬러의 감각적인 측면과도 부합되며 UVB뿐 아니라 당시 피부 손상 효과가 갓 알려지기 시작한 UVA까지 차단할 수 있는 광학적으로 안정적인 필터 성분을 개발하는 데에 있습니다. 1982년 로레알이 특허 등록한 멕소릴 SX는 햇빛 차단을 위해 필요한 모든 특성을 담은 매우 혁명적이며 강력한 UVA 차단 성분입니다. 멕소릴 SX는 비쉬의 선블럭 제품, 까삐딸 쏠레이(Capital Soleil)에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1983(1)- 가르니에 울트라두(Ultra-Doux)

식물에서 얻은 아름다움: 가르니에 연구소가 출시한 울트라두는 맥아, 라임꽃, 캐모마일 등 천연 식물 기반 성분으로 만든 새로운 유형의 가정용 샴푸입니다. 과학과 자연의 결합이라는 브랜드의 포지셔닝에 걸맞게 “식물에서 얻은 궁극의 부드러움”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습니다.

 

1983(2)- 일본 연구소 설립

1983년 프랑수아 달은 일본 시장을 겨냥한 헤어 및 스킨케어를 위한 응용 R&D 센터를 설립합니다. 단 4명으로 시작한 연구소는 150명 규모로 성장하며 일본 소비자 특유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제품 개발을 위한 헤어와 스킨케어 연구를 담당하게 됩니다. 도쿄에 기반을 두었던 연구소는 1990년 가와사키의 카나가와 과학 단지로 이전합니다.